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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위장에 사는 균' 헬리코박터균, 꼭 치료해야 할까?
"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들었어요. 근데 그냥 살아도 되는 거라던데요?", "그냥 위염 있는 거 아닌가요? 꼭 치료까지 해야 하나요?" 건강검진 내시경 결과를 받은 뒤 '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'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환자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.
정말 흔하게 발견되는 균이지만, 동시에 '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' 가장 헷갈리는 존재이기도 하죠. 특히 '위암'과 연관이 있다고 들으면 걱정은 더 커집니다. 그렇다면 이 균, 정말 무서운 걸까요? 반대로,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?
헬리코박터균… 위의 강한 산성에도 살아남는 특이한 균
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산처럼 강한 산성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특이한 세균입니다. 위 점막에 오랫동안 머물며 위염, 위궤양, 십이지장궤양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. 그뿐만 아니라, 세계보건기구(who)는 1994년 이 균을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1군 발암인자로 지정했습니다. 실제로 위암 환자 중 약 70~80%에서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도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.
헬리코박터균… 모두 위암으로 진행하진 않지만, 안심은 금물
헬리코박터균은 위암 발생과 관련이 있지만,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가 위암으로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.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감염된 상태에서도 평생 증상이 없거나, 단순한 만성 위염 정도에서 머무르기도 합니다.
그러나 문제는 이 균이 위 점막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. 시간이 지날수록 위 점막은 점차 얇아지고 위산 분비에 관여하는 세포들이 사라지며, 위축성 위염(위 점막이 얇아지는 변화)이 나타납니다. 더 진행되면 장상피화생이라고 해서, 위 점막이 장의 세포처럼 바뀌는 변형이 생깁니다. 이 두 가지는 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'전암성 병변'으로 분류됩니다.
여기에 흡연, 과도한 음주, 짠 음식 위주의 식습관, 가족력, 나이 등이 겹치면 위암 발생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. 즉, 헬리코박터균 자체가 단독으로 암을 일으키는 건 아니지만, 위 점막이 암으로 가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.
위암 발생률 낮추기 위해 제균 치료는 필수
여러 나라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들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.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받은 사람은 위암 발생률이 의미 있게 낮아졌다는 사실입니다.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는 2008년 일본에서 발표된 다기관 임상시험입니다. 조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제거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없앴더니, 제균치료를 하지 않은 그룹보다 위암이 재발한 비율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. 이 연구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헬리코박터 치료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었고, 조기 위암 치료 후 필수적으로 제균치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.
국내 연구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. 위축성 위염, 장상피화생이 있는 환자에서 제균치료를 한 경우, 하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 발생률이 뚜렷하게 낮아졌다는 보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. 완벽한 예방은 아니지만, 분명히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제균치료는 위암 예방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.
제균치료 후에도 꾸준한 관리는 필수
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위점막 염증이 줄고 궤양 재발도 예방할 수 있지만, 이미 위 점막에 위축이나 장상피화생 같은 변화가 진행된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.
이런 전암성 병변은 제균치료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, 위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. 특히 50세 이상이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, 제균치료 이후에도 정기적인 내시경 추적 검사를 통해 점막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. 위 건강은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고, 시간이 지나며 관리해야 하는 '과정'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.
개인 '위 건강' 상태 점검이 더 중요
헬리코박터균은 위 안에 '있을 수도 있는' 흔한 균이지만, 장기적으로 방치될 경우 위암 발생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.
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, 내 위 점막이 어떤 상태인지, 위험인자가 얼마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. 단순한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, 치료가 필요한지, 추적 관찰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위암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예방 전략입니다.